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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기

[유튜브] 유무상생 / 집착 배움 / 노자 인문학

DAJI 2024. 3. 27. 11:16

고통 : 세상의 애매모호함과 나의 불안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일련의 상태

소유 : 상을 짓는 태도
무소유 : 자기 마음대로 어떤 형상을 지어서 그것을 단정하는 행위를 하지말라
사실을 자기가 고정한 틀에 가두는게 '소유'이다
소유는 눈으로 바라보면 반드시 고통이 따라온다.

소유적시선과 실상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잘 맞지 않는데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여 관철시키려는 것이 결국 '집착'이다.
종국에는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 집착이다. 
이 집착으로 업이 쌓인다.
인간이 업을 쌓는 이유는 그림자처럼 느슨하게 존재하는 것들
일시적인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가지고 영원할 것처럼, 고정된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즉, 업을 쌓는다는 것은 이 세계의 진실한 상태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정되지 않은 상태, 세계는 애매모호하고 불안하다는 실상을 아는 경지를 깨달음이라 하고 이를 불교 용어로 각이라 한다.

세계는 그림자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실상을 깨달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있다.

노자의 사상
안다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것

유무상생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
이 세계는 오로지 관계로 파악된다
그리고 '도'라 하였다.

하늘이 맑은 이유는 1(도)을 근거로 존재하기 때문에 유무상생의 구조위에 있고 대립면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땅은 무너지지 않고 하나를 얻어서 안정된다.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며 잘 사는 이유는 하나를 얻어서 갈고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대립면의 공존, 대립면의 꼬임

하늘이 끊임없이 청명하려고만 하면 장차 무너져 내릴 것이고
땅이 끊임없이 안정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장차 쪼개질 것이며
신이 끊임없이 영험하려고만 하면 장차 사라지게 될 것이고
계곡이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들면 장차 말라버릴 것이며
만물이 끊임없이 살려고만 하면 장차 소멸하게 될 것이고
통치자가 끊임없이 고귀하고 좊게만 행세하려 들면 장차 실각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의 대립면 사이에서 오는 불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어느 한 쪽을 단정하고 선택하여 치달으려고 고집을 부리면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무상생의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청명함이 좋다고 계속 청명한 상태로만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면 
결국 하늘은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청명한 하늘은 오직 비바람 치는 하늘과의 공존 속에서만 청명함을 유지할 수 있다.
땅이 튼튼하게 버텨 주는 것도 물렁물렁한 상태와 공존하기에 가능하다.

발을 딛고 선 이 세계가 대립이 있고 불안이 있고 여기서 오는 긴장은 당연한 것이고 
그 사이를 기꺼이 헤쳐 나가는게 인생이르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수확은 끝이다. 

'상황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는 것이다.

고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노자가 '돌처럼 소박하라'고 이른 것이 길거리의 돌처럼 사소하게 지내라는 뜻이 아니다.
광이불요 화광동진 光而不耀 和光同塵
빛나되 눈을 부시게 하지는 않고, 빛나되 그 빛이 다른 하찮은 먼지들과 조화를 이뤄 같이한다.
외부의 것들을 제압할 정도로 빛난다함은
하나의 방향으로 무언가 드러나는 것인데 대립면의 긴장을 품은 사람은 
다른 이의 눈을 멀게 하는 하나의 빛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은 돌처럼 소박하다.
'대립면의 긴장을 품는다'

보통의 사랑은 서로를 위하는 상태일 것이다.
사실 사랑은 이별을 포함한다.
이별과 사랑은 한 세트인 것이다. 
대부분 사랑은 사랑하지 않아서 깨지는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깨지기도 한다.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깨지고 만다.

도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식에서의 '지' 知를 부정한다. 
대신에 '명'明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 능력은 
지 知의 방법이 아닌 명 明의 방법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지식보다 좀 더 높은 지식이 있을지언정
자기가 철저하게 믿는 작은 대롱 구멍으로만 세상을 보면 
'지 知'
해와 달을 동시에 포착해 관계를 이루는 한 벌의 사건으로 보아 대립을 이해하고 
그 사이에 긴장을 느끼는 능력
이것이 바로 '명 明' 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통찰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타인을 안다 할때는 되게 고정관념이라는 특정개념이 작동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분리된 상태로 세상을 보려는 자신의 고집된 구멍으로
세상을 구분하고 분리하려는 인식을 피할 수 없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다는 느낌, '유무상생'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앎이 자기에게서 시작되는 것, 자기에 대한 앎은 항상 실제적인 앎이다.
주와 객관의 분열이 통합되는 것이 바로 명明이다. 

긴장으로 되어 있는 대립면의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순조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라고 노자는 말한다.

도덕 경에는 
'봄날 얼음이 풀리듯이 하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이라, 얼음이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모호함에서 오는 내 안에 불안함은 오히려 품어버려야 할 것들이다.
자기가 진실이라 믿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내공을 발휘해 '긴장'을 유지할 때
오히려 '폭발력'이 터져 나온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을 '잠시 있는 것'이라 하고 '가유假有'라 칭한다.
당신을 어렵게 한다면, 마음이 힘들다면 
그저 '잠시' 서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순 없을까?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이 자기 표현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배움'이라는 수단을 끊임없이 들여와야 하는 것이다.

자기표현이 안 되는 공부는 끊어버려라
배움이 습관이 되면 평생을 배우기만 하고 세월을 다 보내버린다.
다른 사람의 생각만 배우다가 생이 끝나기도 한다.
배움은 오로지 수단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언제나 자기를 표현하려는 용트림을 하기 위해 
대립면의 긴장을 받아들이기 위해 
특정 이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만큼은 놓지 마라.
이 기본적인 자세를 노자는 '자율'이라고 했다. 

 

https://youtu.be/RPXRabv8mF8?si=q1_B_TYuzXmlv32_

- 하와이대저택, '당신에게 일어날 모든 고통을 '미리' 씻어줄 단 하나의 영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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