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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말은 운명을 데려온다 본문

투자일기

[도서] 말은 운명을 데려온다

DAJI 2026. 8. 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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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운명을 데려온다, 이하영 저 中

• 생각 이전에 말이 먼저다. 
말은 씨앗이고, 마음은 토양이며, 무의식은 그 씨앗이 뿌리내린 숲이다. 
그 숲에는 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이 당신의 생각이 되고, 감정이 되며, 느낌으로 나타난다. 
그 생각, 감정, 느낌이 바로 당신이 ‘현실’이라 부르는 세계다.

• 당신은 당신의 시간 위에 어떤 문장을 올려놓겠는가?
‘나는 어떤 문장을 품고 살아왔는가?’
그 문장을 바꾸지 않는 한 당신은 아무리 달려도 같은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 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다. 
즉, 말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담는 소리다.

• “말은 마음에 뿌리는 씨앗이다.” 
일상에서 쓰는 단어, 대화 속 문장, 습관화된 언어는 나의 귀를 통해 내 마음에 뿌려진다. 
나의 말은 결국 내 귀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씨앗은 나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내면에 숲을 만든다.

• 생각이 바람처럼 떠오를 때 우리는 생각이 만드는 말을 하고, 말이 만드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결국 삶을 바꾼다
‘나는 안 돼요’ 대신 ‘어떻게 하면 될까’로

• 우리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한 세계를 경험한다.

• “나는 지금 행복해.” 이 말에는 현재를 확장해 미래와 연결하는 힘이 있다.

• ‘내가 지금 내 현실에 가장 강력한 주문을 걸고 있구나.’

•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성장하고 있다. 지금의 어려움은 나의 진화를 돕는 감사의 시간이다. 나는 나의 길을 믿는다. 내가 길이기 때문이다.’

• 말이 바뀌자 나의 중심이 바뀌었고, 중심이 바뀌자 나의 세계가 재정렬되었다. 
불평은 감사로, 불만은 감동으로, 불안은 감탄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 내가 쓰는 말이 내일의 나를 불러오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말 위에 서 있다. 
그러니 자신의 말을 항상 점검하라. 점검 속에서 변화하는 당신의 언어를 살펴보라. 
그 언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말이고, 말의 역할이며, 말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말은 마음의 진동이고, 의지의 파동이며, 마음이 물질이 되는 첫 순간이다. 반드시 기억하라.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현실이다.

• ‘내가 그렇지 뭐’가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
“나는 원래 그래”에서 “나는 배우는 중이야”로,
“내가 그렇지 뭐” 대신 “이번에는 다르게 해볼까?”로
바꿔보자.

•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너는 그렇게 느끼고 있구나.”

• 나는 하루 3가지 말로 일상을 설계한다. 
아침에는 선언하고, 낮에는 감사하며, 밤에는 대화한다. 
이 말들이 나의 오늘을 지켜준다.

• 하루는 세상의 말이 아닌 나의 문장으로 시작해야 한다. 
세상의 소음이 아닌 나만의 선언으로 오늘을 열어야 한다.

• 감사는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 아니다. 
뇌가 ‘보상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내적 약물 시스템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더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감사의 말이 지니는 힘이다.

•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라

• 아침의 선언은 하루를 열고, 
낮의 감사는 마음을 다듬고, 
밤의 대화는 자신을 회복시킨다.

• ‘나는 어떤 존재인가?’ 자존감은 나를 알고 나를 존중할 때 쓸 수 있는 단어다. 
내 존재에 대한 인정과 감사, 존중이 가득할 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판단과 시선에 집착하지 않는다.
타인의 말이 삶의 변수가 되지 않고,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중심을 대신하지 않는다.
자존감은 ‘나만의 중심’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 오늘의 나를 허용하고 지금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때 세상은 내 편이 되어준다. 
그 세상이 내 편이 될 때, 여러분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OB를 내도 세상은 OK를 만든다.

• 참새는 나뭇가지가 부러질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믿는 것은 앉아 있는 가지가 아니었다.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자신의 날개였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바로 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금이 가고, 상황에 따라 꺾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그 반대다. 상황이 어긋나도, 사람들의 말이 바뀌어도, 누군가 떠나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가지에서도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개가 바로 자존감이다. 자존심은 깃털과 같다. 부유할 뿐이다. 잔바람에도 흔들리고, 물에 젖으면 무거워진다. 때로는 그 무게조차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자존감은 날개다. 우리를 비상하게 하고, 다친 날개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며, 결국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한다. 깃털은 부유하지만, 날개는 비상한다.

•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은 사실 남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으면, 남의 생각은 하나의 의견일 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내가 나를 의심하면, 남의 생각은 내가 살아가는 기준이 된다.

•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외로움에 민감하기에 자존심이 강해진 것이다. 
그들은 단단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더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조금의 균열에도 깨지기 쉽다.

• 과거는 기억이고, 현재는 오감이며, 미래는 상상이다.
그리고 이 3가지는 인연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과라는 물리적 개념이 아닌, 인연이라는 진리의 개념으로 이어져 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변화시키듯, 미래와 과거도 서로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뭐가 걱정이야, 세상이 내 편인데. 세상이 알아서 하겠지.”

• 세상에 자수성가는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손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우리는 절대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한 부류는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앎이 없는 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교만한 이들이다. 
그래서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은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하고,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은 “나는 세상의 도움 없이는 여기에 올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풍요로운 사람이다. 
타인에게, 세상에게,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 그 나눔과 베풂이 바로 풍요의 본질이다. 
그 풍요가 돈으로 표현되면 부가 되고, 관계로 표현되면 행복한 가정과 좋은 친구가 되고, 몸으로 표현되면 건강이 되며, 능력으로 표현되면 성공이 된다. 결국 부자는 풍요롭고, 도움의 여유가 있는,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세상에게 도움을 받는다. 세상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더 부자가 되도록 돕기 때문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는 여기에 있다.

• 부자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니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단순히 돈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에 풍요와 감사의 마음을 담는 사람이다.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그 필요를 다함으로써 그 사람과 그의 세상을 이롭게 한다.

• 세상에 자수성가는 없다. 우리는 세상의 다양한 손을 통해서만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세수성가’만 있다. 세상의 선물에 보답하는 것은 또 다른 성장의 길이자, 성공의 비밀이다.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제가 도와드릴까요?” 세상과 도움을 주고받을 때, 우리에게는 풍요의 흐름이 생긴다. 마음의 여유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 나눔과 베풂의 여유 속에서 돈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세상의 복리를 따라 커진다.

• just의 j는 juvenate, 새롭게 하다, 즉 깨닫고 성장한다는 의미다. 
u는 understanding, 이해라는 뜻이다. 
s는 start, 시작, 경험의 단어다. 
마지막으로 t는 trust, 그 경험은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믿을 때, 그것을 경험하려 한다. 그 경험에서 깨달음이 생기고, 그 깨달음과 지혜가 한 사람을 전문가로 만든다. 그것이 just가 담고 있는 철자의 숨은 뜻이다. 그냥은 프로의 단어이며, just는 우리를 반드시 성장시킨다.

• 느림은 더 정확히 가기 위한 준비였다.
• 속도는 비교지만, 리듬은 삶이다

• 삶의 우회로에 들어설 때는 잠깐 멈추고 여유를 가져도 좋다. 그것은 안주도 정체도 아니다. 체념이나 포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건 삶의 쉼표일 뿐이다. 신이 넣어둔 쉼표를 마침표로 착각하면 안 된다.

• 바로 ‘나’, 다른 말로 ‘알아차림awareness’이다. 알아차림은 판단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비교가 아니다. 
알아차림은 단순하고 투명한 주시다.

• 지금 반박받는 건 ‘나’가 아니라 ‘내 생각’이다. ‘나’는 괜찮다.”

• 싫은 존재가 다른 존재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역할이라면, 그 존재는 미움의 대상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감사의 대상이다.

• 미워하지 않는 것은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다

• 나만 계속 그 사람을 떠올리며 마음의 에너지를 쓴다. 그건 명백한 내 손해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미움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싫으면 싫은 채로 두고, 그 싫음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다.
‘나는 저 사람이 싫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면 된다. 설명할 필요도, 정당화할 필요도, 공유할 필요도 없다. 싫음은 개인의 감각이고, 미움은 공공의 오염이다. 싫음에서 멈출 수 있다면 마음은 다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살아가자. 싫음은 지나가게 두고, 미움은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 그 알아차림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든다.

• 불편하면 시선을 거두고, 마음이 다치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두면 된다.
‘난 저 사람이 싫어. 그렇지만 미워하진 말자. 그건 나를 싫어하는 행위야. 내 마음에 해로운 일이야. 나를 사랑하자.’

• “아들, 짜증을 내도 된다. 그런데 네가 짜증을 내니까 엄마 마음이 불편해. 너는 어떻니?”
자식은 꾸짖음의 내용을 기억하지 않는다. 꾸짖는 부모의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 ‘감사’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아니요’는 나를 지켜준다.

• 사랑은 상대의 사랑 방식을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네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고 싶어.” 
“네 방식은 나와 다를 수 있지. 그 다름을 배워볼게.”

• 우리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사랑은 ‘너를 이해하겠다’는 약속이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세상을 빼앗는 일이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존재의 빛을 조용히 깨우는 일이다. 
“너는 너여서 좋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념도 포기도 아니다. 바로 존중이다. 존중은 상대를 떠받드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높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존중이 성숙한 사랑의 시작이다.

• 결혼은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해치지 않고, 서로 인정하며 사랑하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서로의 존재로 빛나는 시간이다. 닮음은 관계를 시작하게 하지만, 다름은 그 관계를 성장시킨다.

•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상상을 따라 진화하는 것이다.”
현재의 말이 미래가 다가올 길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미래의 모습으로 내일이 오늘로 펼쳐진다.

• 누군가는 결핍의 문장을 반복하며 세상 전체를 무겁게 느끼고, 누군가는 가능성의 문장을 품으며 보이지 않는 가벼움 속에 살아간다. 그 차이는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에 놓인 언어의 질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삶의 시공간을 설계하는 힘이다.

•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 세상의 인연을 아는 사람은 결과를 나의 본질과 연결 짓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내일의 가능성을 위한 여백으로 남길 뿐이다. 
‘괜찮아’라는 말은 지금의 나를 평가하지 않고, 나의 존재 위에 손을 얹는 행위다. 
실수한 나를 품고, 불안한 나를 다독이며, 결과에 못 미친 나를 안아주는 마음의 품이다. 
실수와 능력이 나의 본질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나타난다. 메타인지의 시선이자 알아차림의 눈이 열린다. 
그 존재를 통해 나는 ‘나 = 능력’이라는 동일시에서 벗어난다. ‘뭐 어때’라는 말은 결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문장이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한발 물러나 ‘내가 만든 기준’으로 돌아오는 선언이다.

• 도전에 실패해도, 누군가 나를 오해해도, 계획이 지연되거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어보자. “괜찮아. 뭐 어때.”

• 모든 것은 허용할 때 흘러간다. 
그 허용의 힘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 
‘그렇구나’라는 알아차림, ‘그럴 수 있다’는 이해와 용서, ‘그래라 그래’의 흘려보냄. 
이 ‘3그’의 지혜가 부러진 크레파스를 연결하는 삶의 시크릿이다. 허용하면 흘러가지만, 저항하면 지속된다.

• ‘아이는’을 발음하면 내 안에 숨겨진 미소가 드러난다.
신은 인간에게 날개를 주지 않았다. 대신 웃음을 주었다.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있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날개가 바로 미소다.

• 부자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부자가 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돈만 많이 벌면 부자가 아니라 ‘부자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돈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돈을 버는 데는 능숙하지만 돈을 쓰는 데는 서툽니다. 절약은 미덕이지만, 절약을 남에게 강요하면 인색함이 됩니다. 인색한 돈은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됩니다. ‘부’는 순환하고 확장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잘 쓸 때, 그 돈은 더 커져서 나에게 돌아옵니다.

• ‘돈아, 고마워. 잘 다녀와.’ 돈에 대한 나만의 주문이다. 이 말 한마디로 나는 ‘돈을 잃는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풍요가 순환한다’는 감각을 느낀다. 사람들은 돈을 쓸 때 ‘돈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돈을 보낼 때마다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고 믿는다. 그 누군가의 필요에 내 돈은 선물이 된다. 돈을 쓸 때 나의 마음이 ‘잃음’이 아닌 ‘보냄’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소비는 손해가 아닌 순환이며, 끝이 아닌 확장이다.

• 언어 다이어트를 시작하라
‘이 이야기는 옳은가?’ ‘이 이야기는 필요한가?’ ‘이 이야기는 따뜻한가?’
확신이 강할수록 언어는 짧아진다. 말이 길어질수록 진실은 멀어진다.

• 자연에서 배우는 관계의 본질
자연에는 비교가 없다. 오직 조화만 있다. 바람은 나무에게 묻지 않는다. 왜 더 빨리 자라지 못했냐고.
햇빛은 꽃에게 따지지 않는다. 왜 더 오래 피어 있지 못했느냐고.
비는 풀에게 화내지 않는다. 왜 너는 꽃을 피우지 않느냐고.
남의 속도로 내 삶을 재지 않고, 남의 성취로 내 가치를 저울질하지 않으며, 남의 꽃을 보며 내 잎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 “세상을 자연하세요.” 우리는 자연을 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란 하늘을 질투하지 않고, 붉은 노을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숲의 나무를 비교하지 않으며, 자연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교만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단 하나의 존재, 인간만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서로를 무시하고 무시받으며, 비난하고 비판한다. 결혼 생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은 ‘일생에 한 번’이지만, 결혼은 ‘일상이 영원’하다. 그 영원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 결혼의 본질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그 사랑하는 상대에게 내가 먼저 적응하는 것이 결혼이다. 그때의 마음가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를 자연처럼 바라보자. 그렇게 바라볼 때 시기와 질투, 무시와 열등감, 비난과 비판을 줄일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듯 서로를 바라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도 감사하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듯 상대를 대하면, 폭풍 같은 파도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서로에게 자연하세요.” 이 말은 결혼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말이다. 서로를 아름다운 자연을 보듯 따뜻하게 바라보고, 상대를 허용할 용기를 지녀보자. 그것이 관계를 지키는 힘이다.

• 위로는 해결책을 들고 오는 게 아니다. 조언하고 충고하고 강요하고 간섭하는 게 아니다. 
위로는 말을 얹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견디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봐”가 아니라 “그랬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의 시작이다. 
상대의 처지와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위로는 내가 ‘위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이다. 위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에게 해결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옆에 앉아 같은 감정으로 숨을 쉬는 일이다.

 

2026.7.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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