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랑 놀자♡

[도서]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본문

투자일기

[도서]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DAJI 2023. 4. 5. 21:46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_나태주 필사시집 중

12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2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46
대답은 간단해요
당신, 내 앞에 있을 때가 제일 예뻐요
웃는 얼굴도 예쁘고
찡그린 얼굴까지 예뻐요
대답은 간단해요
내가 당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당신 사랑하는 것 당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도 당신 앞에 섰을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워요 당당해요
그 또한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54
꽃잎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82

너와 나
손잡고 눈 감고 왔던 길
이미 내 옆에 네가 없으니
어찌할까?
돌아가는 길 몰라 여기 나 혼자 울고만 있네.

86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92
빈방
우리가 정녕 만난 일이나 있었을까?
우리가 정녕 사랑한 일이나 있었을까?
그만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마음
우리가 정말 눈 마주친 일이나 있었을까?
우리가 정말 손잡은 일이나 있었을까?
누군가로부터 솜씨 좋게
속아 넘어갔다는 느낌
아무리 돌아보아도 아무것도
너와 나 사이 남겨진 것이 없어서
다만 새하얀 기억의 길만
멀리 외롭게 뻗어 있을 뿐
나 오늘 너를 이렇게
생각하며 힘들어함을
나의 방은 기억해주겠지
빈방이 고맙구나.

106
당신 탓
멍하니 앉았다가 무슨 일인가를 하다가 갑자기 가 슴이 찡해질 때 있습니다. 눈물이 핑 돌거나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때 있습니다. 자다가도 답답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눈을 깜박거릴 때 있 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당신 탓으로 그렇 습니다. 오늘 당신을 만나고 헤어진 일이 있었던 게 겠지요. 당신을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이 너무 많이 길었던 게겠지요. 아니, 당신 더욱 멀리 떠나갈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는 잊고 살아도 나의 마 음은 잊지 않았음이겠지요. 그나저나 당신, 하루 가 운데 전화 받기 좋은 시간이 언제인지 그거나 알려 주고 떠나기예요.

122
눈이 내린 날
어쩌면 좋으냐 네가 너무 많이 예뻐서 어쩌면 좋으냐
네가 너무 많아서
하늘에도 너는 있고
땅에도 너는 있고
나뭇가지에도 너는 있고
개울 물소리 속에도
너는 있는데
어쩌면 좋으냐
더구나 오늘은 눈이 내린 날
세상 어디에서도 너를
만날 수 없어
세상 어디에서도 너는
너무 많이 없어서.

114
바람 부는 날
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구름 위에 적는다
나는 너무 네가 보고 싶단다!
바람 위에 띄운다.

120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128
시2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130
최고의 인생
날마다 맞이하는 날이지만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 생각하고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여기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인생 하루하루는
최고의 인생이 될 것이다.

134
봄맞이꽃
봄이 와
다만 그저 봄이 와
파르르 떨고 있는 뽀오얀 봄맞이꽃 살아 있어 좋으냐? 그래, 나도 좋다.

144
꽃을 피우자
봄이 오니
화를 냈던 일 부끄러워진다
슬퍼했던 일
미안해진다
꽃이 피니
미워했던 일
누우쳐진다
짜증냈던 일
속상해진다
나도 분명 꽃인데
나만 그걸
몰랐던 거다
봄이다 이제
너도 꽃을 피워라.

152
다만 그뿐이야
믿어봐 믿어 줘봐 네 자신 안에 있는 너를 네가 먼
저 믿어 줘봐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웃어봐 웃어 줘봐 너 자신 안에 있는 너에게 네가 먼저 웃어 줘봐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다른 사람들 뭐라든 무슨 상관이야 뭘 어쩌겠다는
거야 도움이 안 돼
너는 너이고 그들은 그들일 뿐이야 상관없어
사랑해봐 사랑해 줘봐 네 자신 안에 있는 너를 네
가 먼저 사랑해 줘봐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그게 답이야 그것이 옳은 거야 그뿐이야
오늘은 날이 맑고 바람 불어 멀리 떠나고 싶은 날
멀리 사는 얼굴 모르는 사람조차 보고 싶은 날 다만 그뿐이야.

158

누군가 이 시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맛이 날 것이다
어딘가 이 시간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살맛이 날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드디어 당신은 꽃이 될 것이다
팡! 터져버리는 그 무엇
알 수 없는 은은한 향기, 그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162
아침 식탁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루가 잘 저물고 저녁이 오는 것
그보다 더 다행스런 일은 없다
앞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

178

새들이 보고 있어요
우리 둘이 어깨 비비고
걸어가는 것
꽃들이 웃고 있어요
우리 둘이 눈으로 말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186
오늘
지금 여기
행복이 있고
어제 거기
추억이 있고
멀리 저기에
그리움 있다
알아서 살자.

198
혼자서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208
새로운 길
나는 신문을 한 일 년쯤 묵혔다 읽는다
어떤 때는 이삼 년, 더한 때는
십 년이 지난 신문을 읽을 때도 있다
그렇게 읽어도 새로운 소식을
담은 신문이 내게는 정말로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 길을
걸어서 멀리 사라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212
거기 나무가 있었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거기 한 그루 나무 서 있었다. 봄이면 새 이파리 내밀고 여름이면 새가지를 키워 높다라이 하늘 닿게 자라다가 가을이면 이파리를 떨 구고 겨울이면 묵상하는 사람처럼 고개 숙여 서 있 을 따름인 나무 오랜 날들이 그렇게 흘렀다. 사람들 은 나무 아래를 지나쳐대처에 나가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거기 나무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가끔 나무 아래에서 고달픈 다 리를 쉬거나 햇빛을 피하기 위해 앉아 있기도 했지 만 거기 나무가 그렇게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 리곤 했다. 많은 날들이 또 그렇게 흘렀다. 그러던 어 느 날 무슨 까닭으론지 나무가 베어지고 말았다. 나 무가 베어진 뒤 비로소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아, 저 기에 나무가 있었었구나. 그것도 키가 하늘 닿도록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었었구나.
사람들 마음속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씩 심겨진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228
까닭
꽃을 보면 아, 예쁜
꽃도 있구나!
발길 멈추어 바라본다
때로는 넋을 놓기도 한다
고운 새소리 들리면 어,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세우며 서 있는다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네가
내 앞에 있음에야!
너는 그 어떤 세상의
꽃보다도 예쁜 꽃이다
너의 음성은 그 어떤 세상의
새소리보다도 고운 음악이다
너를 세상에 있게 한 신에게
감사하는 까닭이다.

2022.4.5.수

728x90
반응형